"박정희 독재타도, 죽음을 각오해야 외칠 수 있었다"

"박정희 독재타도, 죽음을 각오해야 외칠 수 있었다"

[인터뷰]1979년 10월 16일 부마민주항쟁 현장 - 허진수

 



-1979년 10월 16일 부산대에서 시작
-영구집권 박정희에 "유신철폐, 독재타도"
-같이 밥만 먹어도 징역형..서슬퍼런 독재시대
-시민들 모두 두려움과 공포...죽음 각오한 것
-선배들의 희생위에 지금의 대한민국 있는 것
-헌신과 희생, 기억하고 정신 계승해야
-올해 국가기념일 지정..문 대통령 각별한 관심

■ 방송 : 경남CBS <시사포커스 경남=""> (창원 FM 106.9MHz, 진주 94.1MHz)
■ 제작 : 윤승훈 PD, 이윤상 아나운서
■ 진행 : 김효영 기자 (경남CBS 보도국장)
■ 대담 : 허진수 위원 (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회)

 


◇김효영>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지 40년이 된 올 해, 국가기념일로 지정이 됐습니다.
오늘 오전 경남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열렸죠.
10·26 박정희 시해를 일으킨 계기가 된 그 부마항쟁.
40년 전 부마민주항쟁 현장에 있엇고,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누구보다 바쁘게 뛰어다니신 분 만나봅니다.
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회 허진수 위원 만나보겠습니다. 안녕하십니까?

◆허진수> 예. 반갑습니다. 안녕하세요.

◇김효영> 지난번 인터뷰에서 국가기념일 지정을 촉구하셨는데, 드디어 됐습니다. 축하드립니다.

◆허진수> 예. 감사합니다. 개인적으로는 참 감회가 새롭고요. 만세를 부르고 싶은 심정입니다. 특히 문재인 정부에 감사를 드리고요. 특히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부마항쟁에 대해서는 남달리 관심이 많으신 분입니다.

◇김효영> 그렇습니까?

◆허진수> 부산에 있는 부마항쟁 기념사업회의 이사로도 지냈고요. 그리고 국회의원 시절에는 부마항쟁 기념식을 할 때 오셔서 축사를 하신 적도 있고. 또 15년 전인가, 20년 전인가,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 법률검토를 하기 위해서 한번 모신 적이 있는데, 힘들게 있는데 마산에 오셔가지고 법은 어떻게 제정되어야 되는지 또 어떤 법이 좋은지 가르쳐주신 그런 것도 있고요.
또, 우리 경남도와 창원시, 김경수 지사와 허성무 창원시장도 기념일 지정에 커다란 공헌을 했습니다. 참 감사를 드리고 싶네요.

◇김효영> 허진수 위원께서는 40년 전 10월 16일 어디에 계셨습니까?

◆허진수> 그때는 부산에 있었죠. 부산에서 항쟁에 직접 참여를 했었고요.
부산대에서 시내로 나왔을 때, 16일 당일 오후 2시부터 항쟁이 끝날 때까지 1시간도 빠짐없이 현장에 있었죠. 여인숙 같은데 들어가 잠깐 눈 붙이고 나와서 또 항쟁에 참여하고 조사하고, 그리고 그 당시에 사망자가 있었다는 설 때문에 그 사망자를 찾기 위해서 부산시내를 며칠 동안 걸어서 돌아다녔던 그런 경험도 있습니다.

◇김효영> 당시에 학생이었습니까?

◆허진수> 그때는 학생이 아니었고요. 청년, 기독청년이었습니다. 기독교 청년활동을 하는 청년활동가였습니다.

◇김효영> YMCA 같은 곳?

◆허진수> YMCA에서도 활동을 했고요. 기독교 청년협의회라는 것이 있습니다. EYC라고 하는데 거기에서 활동을 했어요.

◇김효영> 당시에는 기독교 단체가 민주화운동에서 큰 역할을 했죠.

◆허진수> 그렇습니다. 실제로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나면 대부분이 다 교회로 오고, 교회를 울타리삼아서 교회에서 민주화운동을 많이 했죠. 그러다보니까 저 같은 경우도 말석에서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어찌 보면 그런 재야인사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.

◇김효영> 그렇군요. 그때 외쳤던 구호가 바로 "유신철폐, 독재타도"였지 않습니까?

◆허진수> 그렇습니다. 박정희 대통령이 사실상 국회를 구성하고, 영구집권할 수 있도록,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악법을 만든 독재자에 저항한 것이죠.

◇김효영> 그 유신독재 시절은 얼마나 서슬 퍼런 시대였겠습니까. 그때 시민들이 도로에 나가서 박정희를 향해서 독재타도, 유신철폐를 외쳤을 때는 엄청난 용기가.
지금 우리가 광화문이나 서초광장에 나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겠습니까?

◆허진수> 예. 비교가 안됩니다. 그것 하고는.

◇김효영> 두렵지 않았습니까?

◆허진수> 두려웠죠. 두려웠고 모든 시민이 다 두려웠을 겁니다. 그때는, 저 같은 경우 2년 동안 감옥을 살기도 했는데 그 죄목이 뭐냐 하면, 선배를 만나서 배가 고파서 선배 집에 가서 밥 먹자고 해서 점심을 같이 먹었는데 그게 두 사람이 모여서 시국비판을 했다고 해서 그 죄목만으로 2년을 살았습니다.

◇김효영> 선배와 밥 먹은 것 가지고?

◆허진수> 예. 그러니까 어쨌든 눈에 가시 같은 놈인데 구속은 시켜야 되겠는데, 죄목을 찾으려면 죄목은 안 나오고. 그러니까 두 사람이 밥 먹은 거기서 이야기하면서 시국비판을 했지 않느냐. 그걸 가지고 2년이나 감옥을 살았습니다.

◇김효영> 그런 시대에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왔으니.

◆허진수> 죽음을, 사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것이죠.

◇김효영>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것이다.

◆허진수> 네. 어떤 사람들은 그냥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냥 갔을지 모르지만, 이 정권이 어떤 정권이라는 것을 아는 시민들은, 죽음에 가까운 그런 두려움, 공포 이런 것을 느끼면서 참여한 것이죠. 혹시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각오 없이는 앞에 나설 수가 없었죠. 그 당시에는.

◇김효영> 그렇군요.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이기고 독재에 항거한 겁니다.

◆허진수> 네. 그렇죠.

◇김효영> 지금, 그리고 지난 국정농단 사태 때 우리가 안심하고 광장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은 그런 선배들의 희생위에서 가능했던 것이고요.

◆허진수> 예. 그런 희생 없이는, 그런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잘 사는 나라. 민주국가. 이렇게 온 것이지 그 희생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. 정말 우리 시민들, 국민들이 선배들의 그런 그 헌신, 그리고 희생. 이건 꼭 기억해야 될 겁니다. 그리고 그 정신을 계승해야 되고요.
우리 현대사에서 4.19를 비롯해서 부마, 광주, 6월 항쟁까지 많은 분들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는 거거든요.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그런 사실들을 잊지 않고 기념해야 되고. 또 기려야 되고. 그렇게 살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?

◇김효영> 알겠습니다. 40년 전 이맘 때 부산시내를 뛰어다니셨던 허진수 청년. 맞죠?

◆허진수> 예. 그 때는 청년이었죠.

◇김효영> 그때 용기있게 나서주신 점에 대해 후배로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.

◆허진수> 감사합니다.

◇김효영>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.

◆허진수> 예, 감사합니다.

◇김효영> 지금까지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회 허진수 위원과 만나봤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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